2015.10.27.
심란한 마음에도 애꿎은 하루는 계속되어 도서관에 앉아 읽는 둥 마는 둥 시험공부를 하다 합격자 발표문자를 받았다. 원하던 선명한 두 글자에 의지했던 교수님께 뛰어가 수업중인 그에게 와락 안겼다.
"됐습니다. 교수님. 아니 아버지. 아니 교수님 됐어요."
그렇게 바랬던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됐다. 이것도 가치있으니까. 이것도 나름 공직자니까.
2015.02.
너무나도 추운 겨울이었다. 그렇게 자리잡고 싶었던 서울이라는 공간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길 결정했다. 흐느껴 울었다. 그냥 하염없이 울었다. 지나가버린 나의 시간과 나의 노력과 나의 꿈이라는 것이 무너지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밖에 없음을 알았을 때 애써 참아오던 감정이 무너져내렸다.
실패.
실패 뒤에 다시금 실패 모두의 반대에 나의 고집을 부려 나아온 길이 결국은 실패라는 점에서 꿈을 위해 수년의 몸만 뉘이던 골방에서 기거하던 나 자신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차가운 방바닥 아래를 뚫고 그 밑의 더욱 어두운 깊은 바닥으로 내려간다. 심연으로의 추락은 상승보다 더욱 빠르다. 아니, 상승은 있었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나의 가치를 지향할 수 없다는 점이, 「돈」이라는 매개물을 바라보는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순간에 봉착했다는 점이 스스로에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내가 부족해서,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 나의 의지가 부족해서, 나의 꿈에, 나의 가치관에 다가가기 부족했다.
내가 그 직업을 선택했던 이유는 보람이었고, 명예였고, 요즘의 말론 선한 영향력이었다. 짧은 군생활을 지방의 중소도시에서 해양경찰로 복무하며 느꼈다.
「도움이라는 것은 절대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다.」
한번은 글을 모르는 어부의 서류를 읽어드렸고, 한번은 선장에게 맞아 피떡이 된 외국인 선원을 보호해주었다. 또 한번은 내 또래의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아이에게 「이놈 아저씨」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의 아버지를 겨울바다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자식들이 사줬을 무스탕을 입고 곤히 누워 작은 가방에 들어가 조용히 누워있던 한 평생 살아온 누군가의 아버지. 그를 형사계에 인계하고서 들리는 「사람을 찾습니다」의 메아리와 흘러나오는 인상착의를 들은 순간, 선임과 연거푸 뿜어대던 회색의 담배연기의 침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별 거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된다는 걸, 내가 하는 모종의 '것'들이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그것이 기회가 부족했던 누군가에게, 절박한 누군가일수록 작은 도움이 더 크게 느껴질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부모님이 반대하던 세계로 뛰어들었다.
가치있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보람됐다. 그런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공간으로, 서울에서 꿈을 이루길 고대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나의 가치를 직업으로 가질 수 없음이 슬프고 힘들었다. 유형의 가치를 좇는 삶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지금의 직업 직전까지 괴롭혔다. 그렇게 낙향한 고향에서 다시 시작한 새로운 전공. 꿈을 포기했음에 포기 할 만큼의 변명 정도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 만큼만의 노력은 해야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일어나 걸었다.
나이에, 자격증에, 돈을 좇기도 여간 버거워 이름도 모르던 공기업에 지원했다. 블라인드 채용이라 서류정도는 합격할 수 있다는 말에 필기나 봐보자고 지원한 것이 면접까지 다다르게 되니 간절해졌다. 꿈에 조금은 가까웠던 기업이었으니까. 수익보다는 적자를 내며 공익의 가치를 우선으로 한다면 내쳐진 꿈을 다시 한번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면접준비를 하며 직업적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돈보다는 직업적 가치를 우선으로 바랐고 그 기업과 함께 하게 되었다.
「저의 열정으로 대한민국을 밝히겠습니다.」
뭐 그렇게 대단한 문장은 아니지만, 면접관을 위했던 한 문장이 고향을 떠난 7년이라는 시간동안 야근을 하는 순간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의 좌절앞에서 읊조렸다. 지금의 어린 내가 보지 못하는 의미없어보이는 무형의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나는 지금의 땀도, 변덕스런 누군가의 요구에 따른 야근도, 주말출근도 나의 모든 것이 가치있는 행동이라 생각하며 모든 걸 버텨냈다.
2022.06.
고향을 떠나, 곁을 떠나, 익숙함을 떠나, 매번 새롭게 적응해나가는 것들이 '누군가를 위한다'는 가치의 실현을 위한 나의 희생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들이 참 많았고 지금은 조금 힘들다.
공기업만이 실현해낼 수 있는 가치를, 놀고먹는 공기업이라는 생각을 바꾸기 위해, 신뢰받기 위해, 소정의 급료를 받는 내 스스로에게 떳떳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그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지금껏 그린 가치보단 왜곡된 것들이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이 조직에, 이 사회가 바라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군가의 꿈을 누군가의 가치를 무너뜨려야 행복한 사회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왜 그런 이들을 위해 희생했나.
나는 왜 그런 이들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나.
나는 왜 그렇게 살아왔나.
나는 왜 스스로의 답을 찾지 못했나.
'For Myself > Pensie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10.22.]옥상 달빛 아래. 맛있는 주말. (0) | 2022.10.27 |
---|---|
[2022.08.10] 드디어...코로나 양성쓰... 투병일기... (+인후통 극복기) (0) | 2022.08.15 |
[2022.06.13.] 울타리 그 경계에서 (0) | 2022.06.13 |
[2022.06.13.] 결국 사진도 호기심이다. (0) | 2022.06.13 |
[2022.04.06.] 사진과 그 영속성에 대하여 (2) | 2022.04.06 |
댓글